행복했던 독일 유학 성공과 실패의 기록 3. 한국을 떠나고자 마음먹었던 세 가지 이유
하소연 일상 글 입니다.
다른 날들을 괜찮았지만 오늘은 특별히 감정에 많이 휘둘려 살았습니다. 어제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여파인가요. 어제 드라마 결말은 정말이지 화나는 결과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분노를 금치 못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요. 저도 쉽사리 화가 누그러들지 않네요...
제가 독일로 떠나고자 했던 사건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일단 당연히 독일에 공부하러 가자 하는 생각으로 떠난 것이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였는데요.
첫째는 물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제 능력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과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벌다가는 큰일이 나겠다 싶은 생각이 늘 들었었죠. 저는 늘 지속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한국처럼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임금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나라에서는 살기 힘들겠다, 아니 살 수 없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야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만, 한국에서 밥벌이 하시며 살아가시는 대부분의 진짜 어른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석박사 따면 되지 않겠냐 하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시다시피 저처럼 제가 벌어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에게는 꿈같은 일 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저는 생활비를 걱정할 만큼 벌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안정적이지도 않았고 수입이 높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를 꿈꾼다는것은 정말이지 사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이렇게 그냥 나이만 먹으면 결국에는 비참한 끝이 기다리고 있겠구나 하고요. 저야 어찌저찌 삶을 마감하면 된다지만 남겨질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와중 공부도 할 수 있고 나름의 미래도 꿈꿔볼 수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고(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좀 더 깊게 알아보고 준비할 수 있었고) 유학과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사회가 붕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뉴스에서 이야기 하지 않아도 한국 사회만큼이나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사회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한국만큼 각 세대별 성별, 정당별, 빈부의 격차에 따라 공간이 분리되고 또 그 공간이 철저하게 경계지어지는 곳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나이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고, 비장애인과 장애우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여성과 남성이 한데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며,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모여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모든 그룹들이 싸우는 공간만이 존재 할 뿐이죠.
사회가 붕괴한다는것은 사회 구성원들간의 신뢰가 무너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회 구성원들간의 아주 작은 신뢰들 예를들어 한 남자가 4차선 도로를 막무가내로 횡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학대받는 고양이를 구조하려는 사람을 경찰이 몰아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좋은 마음으로 도와준 일에 무시와 조롱으로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인도로 오토바이가 올라와 횡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등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러한 믿음들이 매일같이 무너지고 있었고 사실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시금 이러한 믿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가 독일에 갈 수 밖에 없겠다 생각한 시점이 있습니다. 행신동 햇빛마을 아파트 단지 안에는 작은 사거리가있고 그곳에는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행신동 외곽쪽이다보니 밤에 덤프트럭도 좀 서있고 간혹 밤에 덤프트럭들이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날도 아내 심부름으로 뭔가를 사러 나가던 중이었죠. 그 때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한 가장이 무당횡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는 덤프트럭이 다가오고 있었죠. 저는 몸이 먼저 반응해 그분을 도와드리려 했지만 순간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저 분을 도와줬다가 덤탱이를 쓰는 건 아닐까, 내가 저 분을 도와드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우리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릴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어 나가던 몸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주변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다들 술에 취한 채 길을 건너는 그 가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미소를 띄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죠. 네.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요.
저는 몸을 돌리고야 말았습니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것을 보니 그는 차에 치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미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이상 누군가를 도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요 며칠 사이 누군가를 돕기 위한 마음으로 한 행동으로 인해 또다시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이 되고,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다 때려 치우고 그냥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감정에 휘둘려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재미있던 공부도 힘에 부칩니다. 특히나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 돈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경험을 하면 배로 힘이 듭니다. 내일도 힘든 일을 하나 넘겨야 하고, 다음주도 힘든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이 고비를 잘 넘겨 내년에는 독일에서 웃으며 공부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사실 제가 지리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애국심의 발로이긴 합니다. 제가 쓴 글을 보시면 이런 매국노가 있나 싶으실 수 있겠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나라를 너무도 사랑해서 그만큼 화가 나는 것이죠.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제 화가 나지 않았던것 처럼요.
제가 공부를 해서 뭐 대단한 것을 바꿀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나라안의 이 큰 갈등과 증오 혐오 분노를 풀어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때문에 제가 독일에서 공부하려는 분야도 공간갈등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깊은 증오와 원한을 공간안에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독일에서 그 해답을 찾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것이 제 꿈입니다. 그럼 하소연은 이만하고 잡히지 않는 꿈을 잡기 위해 남은 시간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긴 글, 긴 하소연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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